이자겸의 난은 1126년(고려 인종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자겸은 대대로 할아버지때부터 고려왕실의 외척으로 급성장한 가문이었습니다.

이자겸의 딸이 낳은 아들이 바로 고려 인종입니다.
또한 이자겸에게는 많은 딸들이 있어서 인종에게는 또 다른 이자겸의 딸이 시집을 갔기 때문에 인종에게 있어 이자겸은 외할아버지 이면서 장인이 되는 지금으로서는 좀 이상한 족보가 됩니다.

 이자겸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할만큼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되었고 결코 고려 임금인 인종 조차도 그를 견제하기 힘들정도로 그의 권력은 대단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고려인종은 뜻있는 세력들을 모아서 이자겸 세력을 제거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치밀하지못한 계획으로 인해서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꼴이 됩니다.
이자겸의 사람 일부가 죽임을 당했을뿐 완전히 축출하지못하였고, 오히려 고려인종이 왕위에 크나큰 위협을 당하게됩니다. 궁을 모두 걸어잠궈 항전했고, 이자겸은 궁에 불을 지르기에 이릅니다.

이후 이자겸의 반대세력들은 이자겸에 의해서 숙청되었고, 임금인 인종마저도 왕위가 어찌될지 모를 정도로 그 힘을 잃게 됩니다. 결국 이자겸에 의해서 이자겸의 집에 연금당하는 굴욕을 맛보게 됩니다. 

이자겸은 이로서 만족하지 않고 호시탐탐 인종을 시해할 계획을 세우기까지 합니다.

당시 이자겸을 타도하고자하는 세력들이 모여들었고 이자겸에게는 척준경이라는 장수가 있었는데 한날은 이자겸의 노비와 척준경의 노비가 시비가 붙었고 서로 주인을 들먹이며 싸웠다합니다.

이후 이자겸과 척준경의 사이는 벌어지게되었고 이것을 인종이 알아차리고 척준경을 몰래 불러 이자겸을 축출하도록 이간질을 하게되었던것이죠
.
임금이 명하는 그리고 인종이 출세길을 보장하니 척준경은 이자겸을 배신하고 이자겸을 끌어내리게 됩니다.
이후 이자겸은 귀양을 가게되었고 척준경은 훗날 처벌을 받게되었구요.


이자겸이 법성포로 귀양을 왔다가 조기의 맛에 반해 임금님께 진상하면서 굴비가 알려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자겸의 난을 진압하는데 외세를 끌어들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시 금나라가 강성해졌고 이자겸은 괜히 금나라의 심기를 건드려 자신의 권력을 잃을것을 염려하여 금나라를 상국으로 모시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오늘은 1198년 고려에서 최충헌의 사노비인 만적이 일으킨 노비해방운동에 대해 논해보고자 합니다.

난을 일으킨 만적은 자신들의 상전을 죽이고 스스로 공경대부가 되자고 주장하며 계획을 세웠습니다.

무신 집권기 때 하극상 풍조가 유행하고, 노비들의 고통이 어느 때보다 심한 것이 이 사건의 발단으로 생각 됩니다.

만적은 다른 사노비들과 함께 개경의 뒷산에서 나무를 하던 중 처음으로 난을 일으킬 의논을 하였습니다.


[그림]본 사건과 유사한 소재를 다룬 KBS드라마 ‘추노’의 한 장면

“정중부(鄭仲夫)의 난 이래 나라의 공경대부(公卿大夫)는 노예계급에서도 많이 나왔다.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어찌 원래부터 씨가 있겠는가, 때가 오면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주인의 매질 밑에서 근골(筋骨)의 고통만을 당할 수는 없다. 최충헌을 비롯하여 각기 자기 상전을 죽이고 노예의 문적(文籍)을 불질러, 우리 나라로 하여금 노예가 없는 곳으로 만들면 우리도 공경대부 같은 높은 벼슬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라고 연설을 하였다고 합니다.

만적을 비롯 가른 노비들이 합심하여 거사를 계획하였으나, 율학박사 한충유의 사노 순정이 이 계획을 상전에게 밀고하여 사전에 발각되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조직에는 배신자가 꼭 나오는군요.

중간에 이런 밀고로 인하여 만적과 이를 따른 수백명의 노비들은 체포되어 강물에 던져져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한편, 반란 음모를 밀고한 순정은 은(銀) 80냥(兩)을 상금으로 받고, 또 양민(良民)으로 되었으며, 한충유도 합문지후(閤門祗候)라는 높은 관작을 받았습니다.

삼국유사 저자 일연은 무신정변 이후의 혼란한 사회에 대한 자각과 반성에서 그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 기준을 찾는 것을 시발점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과거의 전통을 재인식하려는 문화적 배경이 고려사회 전반에 전개되고 있던 데에 그 토양을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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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민족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는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외세의 압력을 극복하고자 하는 정신사관적 역사의식이 나타나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정신사관을 강하게 반영하는 사서가 삼국유사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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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는 김부식이 편찬한 책으로 신라 계승의식을 반영하고 유교사관에 입각하여 쓴 역사책입니다.

기전체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고조선 및 삼한의 비기록, 삼국사(신라중심) 내용입니다.

삼국유사는 일연이 저술한 책으로 불교사를 중심으로 고대의 민간 설화나 전래 기록을 수록하여 고유문화와 전통을 중시하여 저술하였으며 단군을 우리 민족의 시조로 여겨 단군의 건국 이야기를 수록하였습니다.

기사본말체 형식으로 단군부터 고려말 충렬왕 때까지 기록하였으며 신라 관계 기록이 다수 수록되어 있습니다.

두 책의 공통점으로는 쓰여진 시점이 고려시대라는 것이 같습니다. 자세하게는 삼국사기는 고려중기, 삼국유사는 고려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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