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198년 고려에서 최충헌의 사노비인 만적이 일으킨 노비해방운동에 대해 논해보고자 합니다.
난을 일으킨 만적은 자신들의 상전을 죽이고 스스로 공경대부가 되자고 주장하며 계획을 세웠습니다.
무신 집권기 때 하극상 풍조가 유행하고, 노비들의 고통이 어느 때보다 심한 것이 이 사건의 발단으로 생각 됩니다.
만적은 다른 사노비들과 함께 개경의 뒷산에서 나무를 하던 중 처음으로 난을 일으킬 의논을 하였습니다.
[그림]본 사건과 유사한 소재를 다룬 KBS드라마 ‘추노’의 한 장면
“정중부(鄭仲夫)의 난 이래 나라의 공경대부(公卿大夫)는 노예계급에서도 많이 나왔다.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어찌 원래부터 씨가
있겠는가, 때가 오면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주인의 매질 밑에서 근골(筋骨)의 고통만을 당할 수는 없다.
최충헌을 비롯하여 각기 자기 상전을 죽이고 노예의 문적(文籍)을 불질러, 우리 나라로 하여금 노예가 없는 곳으로 만들면 우리도
공경대부 같은 높은 벼슬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라고 연설을 하였다고 합니다.
만적을 비롯 가른 노비들이 합심하여 거사를 계획하였으나, 율학박사 한충유의 사노 순정이 이 계획을 상전에게 밀고하여 사전에 발각되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조직에는 배신자가 꼭 나오는군요.
중간에 이런 밀고로 인하여 만적과 이를 따른 수백명의 노비들은 체포되어 강물에 던져져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한편, 반란 음모를 밀고한 순정은 은(銀) 80냥(兩)을 상금으로 받고, 또 양민(良民)으로 되었으며, 한충유도 합문지후(閤門祗候)라는 높은 관작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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