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식은 ‘삼국사기’ 선덕왕조에서 “진평왕이 승하했는데 아들이 없자 나라 사람들이 (진평왕의 딸인) 덕만(德曼:선덕여왕)을 왕으로 세웠다”라고 썼고, 일연 역시 ‘삼국유사’ 왕력편에서 “성골의 남자가 없기 때문에 여왕이 즉위했다”고 쓴 이래 이 설명이 정설이 되어왔다.
한 마디로 선덕여왕은 성골의 핏줄 때문에 임금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사본 ‘화랑세기’는 선덕여왕이 단지 성골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능력으로 국왕이 되었음을 전해준다.
또한 ‘삼국사기’와는 달리 진평왕의 장녀가 아니라 차녀라고 적고 있다.
‘화랑세기’에 따르면 선덕여왕에게는 천명(天明)이라는 언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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