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열사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독립운동가 입니다.

본관은 고흥.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나셨으며 아버지 중권, 어머니 이씨 사이에서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나셨습니다.

이분의 찬란했던 발자취를 돌아 보도록 합시다.

1904년 충청남도 천안군 병천면 용두리 지령마을에서 유중권의 딸로 태어남.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됨. 

1910년 한일합방조약이 조인됨. 

1911년 아버지가 천원에 흥호 학교를 세움. 

1915년 아버지가 일본인 고마다에게 매를 맞고 자리에 누움. 

1916년 기독교 감리교 공주교구 미국인 선교사 부인의 도움으로
          사촌언니 애다가 다니는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에 입학함.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주위의 어려운 학생들을 도와줌. 

1918년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이 되어 ‘잔 다르크’, ‘나이팅게일’ 전기를 읽고 크게 감명받음. 

1919년 고종황제가 세상을 떠남. 31독립 운동이 일어남.
           국현숙, 김희자, 유점선 등 5명과 함께 31운동에 참가하여 시위함.

1919년 3월 3일 조선총독부에서 휴교령을 내려 고향으로 돌아감.
          천안, 청주, 공주, 조치원, 진천 등지를 돌아다니며 만세운동 참가를 권유함.
          음력 2월 그믐달, 매봉산에 올라가 만세 운동을 알리는 횃불을 밝힘.
          음력 3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 부모가 일본헌병의 총탄에 사망.
          헌병대에 체포되어 고문을 당함. 공주재판소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음.
          나이가 어리다는 점을 들어 석방시키라는 여론이 빗발침.
          만세를 부르지 않으면 석방시키겠다는 재판장의 말을 듣고 격분함.
          법정모독죄로 4년의 형이 추가되어 징역 7년을 선고받고 형무소에 갇힘.
          감방 안에서 만세소동을 일으켜 독방에 갇힘.
          심한 고문으로 병들었으나, 함께 고생하는 동지들을 도와주고 격려함.

1920년 음력 3월 1일 낮 12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다 간수들에게 고문당함.
          고문으로 병이 심해져 병자가 있는 감방으로 옮겨짐.
          10월 12일 아침, 병든 몸을 일으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세상을 떠남.

 유관순 열사가 별세한 뒤 42년이 지난 1962년… 유관순 열사에게는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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